음성 AI와 운전자 보조기술, 자율주행이 넓혀 주는 새로운 길.
장애와 기술의 발전에 관한 글을 쓰다 보면 자꾸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기술이 장애를 완전히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혼자 해결하기 어려웠던 일을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중요한 것은 몸의 기능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다른 경로를 만들어 주는 것도 기술의 중요한 역할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정면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옆길을 찾고, 혼자 하기 어렵다면 도구를 사용하고, 하나의 방법이 막히면 다른 방법을 연결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이런 사고방식은 거창한 철학이라기보다 생활에 가깝다.
얼마 전 AI와 대화하다가 농담처럼 이런 말을 했다.
“너도 장애가 있어 봐. 우회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리가 자동으로 돌아가.”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꽤 정확한 표현이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기술.
나는 뇌성마비로 인한 언어장애가 있다.
내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발음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표정과 입 모양을 볼 수 없는 전화 통화에서는 의사소통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AI와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도 이것이었다.
‘AI가 내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정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사용해 봐야 한다. 모든 발음을 완벽하게 인식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래도 과거의 음성인식 기술과 지금의 AI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예전의 음성인식은 내가 말한 소리를 정확한 단어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발음이 조금만 다르면 전혀 다른 단어로 인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AI는 단어 하나만 듣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앞뒤 문맥과 사용자가 무엇을 하려는지도 함께 추론한다.
발음이 조금 불분명하더라도 앞뒤 내용을 바탕으로 의도를 이해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생각해 보았다.
전화를 걸기 전에 AI에게 내가 물어볼 내용과 예상되는 답변을 미리 알려 주고, 통화 중에 의사소통을 보조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전화 예약이나 간단한 문의, 음식 주문처럼 반복적인 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드라이브스루에서 주문할 내용을 미리 AI에게 알려 주고, 차량 안에서 음성으로 대화를 보조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모든 통화를 AI가 대신해 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서비스 연결 방식이나 개인정보, 상대방에 대한 안내처럼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이 향하는 방향이다.
예전에는 상대방이 내 발음을 알아들어야만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
앞으로는 AI가 내 의도를 정리해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중간다리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
내 몸을 억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의사소통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운전할 수 있다는 것과 편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것.
운전에서도 기술의 도움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나는 직접 운전해 여러 지역을 다닌다. 산길과 고갯길도 가고, 장거리 이동도 한다.
하지만 뇌성마비는 몸의 한쪽만 불편하고 다른 쪽은 완전히 정상인 단순한 장애가 아니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거나 고개와 상체를 빠르게 돌리는 동작, 발목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동작에서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힘이 들 수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평소에는 어렵지 않았던 동작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특히 도로가 막힐 때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계속 번갈아 밟는 일은 생각보다 발목에 큰 피로를 준다.
일정한 속도로 주행하는 것보다, 조금 움직였다가 멈추는 동작을 계속 반복할 때 발목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크루즈컨트롤 기능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한다.
비장애인에게 크루즈컨트롤은 장거리 운전을 편하게 해 주는 기능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발목 사용을 줄이고, 강직과 피로를 늦추며, 조금 더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기술에 가깝다.
같은 기능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어라운드뷰는 단순한 주차 편의 기능이 아니다.
어라운드뷰 역시 마찬가지다.
차량 주변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여 주는 어라운드뷰는 일반적으로 주차를 쉽게 해 주는 편의 기능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몸을 빠르게 돌리기 어렵거나 목과 어깨의 움직임에 부담이 있는 운전자에게는 단순한 편의 기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차하거나 좁은 길을 통과할 때는 차량의 앞뒤와 좌우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고, 반대편을 다시 확인하고, 뒤쪽을 살피기 위해 상체를 움직이는 동작이 반복된다.
비장애인에게는 별것 아닌 움직임일 수 있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반복 동작 자체가 피로와 긴장을 만들 수 있다.
어라운드뷰는 차량의 앞과 뒤, 양옆 상황을 화면 하나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낮은 장애물이나 연석, 차량 바로 옆의 사각지대도 비교적 쉽게 살펴볼 수 있다. 몸을 무리하게 비틀거나 여러 방향을 반복해서 확인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 주는 것이다.
물론 화면만 믿고 운전해서는 안 된다. 거울과 육안 확인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확인해야 할 정보를 한곳에 모아 준다는 것만으로도 운전자의 신체적 부담과 긴장은 크게 줄어든다.
누군가에게 크루즈컨트롤과 어라운드뷰는 차량을 구입할 때 있으면 좋은 선택 사양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혼자 운전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 주는 장치다.
같은 기술이라도 누구에게는 편의 기능이고, 누구에게는 독립적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보조기술이 된다.
자율주행은 편안함보다 이동의 결정권에 가깝다.
자율주행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사람들은 자율주행을 이야기할 때 차 안에서 쉬거나, 이동 중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자율주행은 단순한 편안함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병원에 갈 수 있는가.
원하는 장소로 여행할 수 있는가.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
결국 이동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동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한다면 갈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은 자연스럽게 제한된다.
다른 사람의 일정과 컨디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차량이 이동의 상당 부분을 맡아 준다면 장애인은 목적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출발 시간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완전자율주행이 아직 모든 도로와 상황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운전자 보조 기능 역시 운전자의 주의와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기술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크루즈컨트롤은 발목의 부담을 줄여 준다.
어라운드뷰는 시야와 몸의 움직임을 보완해 준다.
차선 유지와 충돌 방지 같은 운전자 보조 기능은 판단해야 할 부담을 일부 덜어 준다.
그리고 미래의 자율주행은 운전 자체의 부담을 크게 낮춰 줄 수 있다.
이 기능들이 하나씩 연결될수록 장애인의 이동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일’에서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선택하는 일’로 바뀌어 간다.
하나의 AI가 못 하면 다른 AI를 연결하면 된다.
최근에는 주식 차트를 보다가 또 하나의 우회 방법을 떠올렸다.
어떤 종목이 하루 만에 크게 상승한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종목을 어제 미리 찾아낼 방법은 없었을까?’
나는 평소 AI에게 종목 차트를 보여 주고 분석을 요청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AI가 내가 보여 준 차트는 분석할 수 있어도, 한국 증시의 모든 종목을 실시간으로 계속 감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증권사의 조건검색 기능으로 후보 종목을 뽑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 가다가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구글금융의 주가와 차트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AI가 먼저 시장을 검색하고, 다른 AI가 검색 조건을 설계하고 최종 판단을 맡으면 되지 않을까.
한 AI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한쪽에서는 시장을 넓게 탐색한다.
다른 쪽에서는 어떤 종목을 골라야 하는지 조건을 설계한다.
그리고 나는 결과를 검토해 실제로 매수할지를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을 넣지 않는 것이다.
며칠 동안 후보 종목을 기록해 실제로 다음 날 얼마나 올랐는지 검증한다. 결과가 반복해서 좋게 나온 뒤에야 소액으로 실행한다.
이 생각을 하면서 나도 조금 웃겼다.
AI 하나가 안 된다고 하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다른 AI와 연결할 방법부터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단한 발명을 하려고 애쓴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길이 막혔으니 다른 길을 찾았을 뿐이다.
장애를 가지고 살다 보면 우회로를 찾는 일이 익숙해진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작은 벽을 만난다.
손으로 하기 어려우면 다른 도구를 찾는다.
오래 걷기 어렵다면 이동수단을 바꾼다.
말로 전달하기 어렵다면 글이나 기계를 이용한다.
몸을 돌리기 어렵다면 카메라와 화면을 활용한다.
발목을 반복해서 사용하기 어렵다면 차량의 주행보조 기능을 이용한다.
정해진 방법이 나에게 맞지 않을 때, 그 방법을 그대로 포기하기보다 구조를 다시 만드는 일이 익숙해진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기술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다.
새로운 기능 하나가 생활의 범위를 넓혀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던 일을 혼자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내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바로 이것이다.
장애가 있어 보면 우회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리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장애가 좋은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장애 때문에 겪는 불편과 피로는 실제로 존재한다. 가능하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어려움도 많다.
장애가 사람을 반드시 강하게 만든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장애와 함께 살아오며 한 가지 능력이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은 사실이다.
주어진 방법이 나에게 맞지 않을 때, 다른 방법을 찾는 능력이다.
기술은 장애를 없애기보다 선택지를 늘려 준다.
예전의 보조기술은 부족한 신체 기능 하나를 대신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걷기 어렵다면 휠체어를 사용하고, 듣기 어렵다면 보청기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런 기술도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은 단순히 하나의 기능을 대신하는 단계를 넘어가고 있다.
음성 AI는 말의 소리뿐 아니라 의도와 문맥을 이해하려 한다.
운전자 보조기술은 차량 주변의 정보를 모아 운전자의 신체적 부담을 줄인다.
자율주행은 이동의 일부 또는 전부를 차량에 맡길 가능성을 열고 있다.
여러 AI를 연결하면 혼자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정보도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
기술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기술을 연결하면 개인에게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장애인은 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필요도 없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조합하고, 자신의 조건에 맞게 바꾸고, 부족한 부분은 또 다른 기술로 연결하면 된다.
결국 기술의 가장 큰 가치는 장애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장애가 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늘려 주는 데 있다.
말하기 어려워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고, 몸을 자유롭게 돌리기 어려워도 차량 주변을 확인할 수 있으며, 발목이 쉽게 피로해져도 장거리를 운전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신체 조건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이동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배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길이 막히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는 것.
그리고 기술의 발전은 이제 그 다른 길을 점점 더 넓고, 빠르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