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또 입원을 하셨다..

이글은 지난 24년 10월 25일의 일이다.

지난 금요일,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화요일에 읍내에서 노인일자리 교육이 있는데, 교육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으니 돌아오는 길만 차량 운행을 해줄 수 있느냐는 말씀이었다. 나는 당연히 해드리겠다고 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갈 때는 어떻게든 가실 수 있는데, 교육이 끝난 뒤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문제라고 하셨다.

그런데 주말에 우연히 다음 주 날씨를 보게 되었다.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가을비가 내린다는 예보였다. 비가 오면 아버지가 교육장까지 가는 길도 불편하실 것이고, 괜히 비를 맞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길만이 아니라 왕복으로 모셔다드리기로 마음먹고, 약속한 시간에 부모님 댁으로 갔다.

현관문 앞에 다다랐을 때, 안에서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께 괜찮으시냐고 묻는 목소리였다. 나는 바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계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쓰러지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숨소리가 이상했다. 마치 좁은 통로로 숨을 힘겹게 내쉬는 것처럼, 숨이 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순간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곧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물을 드시게 하니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잠시 뒤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더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를 내 차에 태우고, 어머니와 함께 부여 읍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아버지를 맡기고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 듯했다. 잠시 후 결과를 들으러 들어갔더니, 폐에 물이 차 있고 심장으로 들어가는 혈관 하나가 막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병원에는 혈관을 뚫는 장비가 없으니 상위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응급실을 나오자마자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은 바로 대전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가서 접수를 해놓겠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설구급차에 태워 대전 병원으로 이송시켰고, 그 뒤에야 공주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오후에 시간이 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내가 아버지 간병을 하러 갔다. 다행히 아버지는 거동이 가능하셨다. 요즘은 병원 장비도 좋아지고 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장애가 있는 나도 시중을 드는 데 생각보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몸이 편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예전 같았으면 훨씬 더 힘들었을 일들이, 지금은 장비와 시스템 덕분에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남겨진 문제는 결국 우리였다.

우리는 자식이 없다.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 때,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나뿐만 아니라 너구리도 마찬가지다. 둘 다 장애가 있고, 자식도 없다.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지만, 나이가 더 들고 몸이 더 불편해졌을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까. 그 생각을 하면 참 막막해진다.

요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미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채널들이 있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 중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10년에서 15년 안에 실제 생활 속에서 쓰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가장 먼저 투입될 곳은 위험한 산업현장일 것이고, 그다음은 간병 분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그냥 먼 미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리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 때쯤이면, 지금 집집마다 자동차를 보유하듯 한 가정에 휴머노이드 로봇 하나쯤은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런 기술은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돈이다. 미래에도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준비가 필요하다. 좋은 기술이 나와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뉠 것이다. 앞으로의 노후는 단순히 오래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술과 어떤 도움을 이용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조급해질수록 판단은 흐려지고, 일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님의 병원 생활을 보며 내 미래를 생각하고, 자식 없는 노후를 인정하고,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씩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천천히, 꾸준히, 그리고 현명하게 준비해 나가면 된다.
불안하다고 해서 무너질 필요는 없다.
미래를 걱정하되, 오늘 할 수 있는 준비부터 해나가면 된다.


이글은 지난 24년 10월 25일의 일이다. AI 에게 내 블로그를 살펴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 달라고 했더니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해왔다.


이 글 하나로 클라이언트님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제가 느낀 핵심은 이겁니다.

클라이언트님은 단순히 “아버지가 입원했다”는 사건을 기록한 게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부모님의 노화, 자신의 장애, 자식 없는 노후, 미래 기술, 돈의 필요성까지 한 번에 연결해서 보고 계십니다. 이건 그냥 감정적인 글이 아니라, 삶 전체를 구조로 보는 사람의 글입니다.

특히 더 알게 된 부분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클라이언트님은 가족에게 쉽게 기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이 힘들어도 최대한 조용히 감당하고,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걱정을 넘기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둘째, 클라이언트님은 현실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간병을 하면서 “나중에 나는 누가 돌봐주지?”라는 질문까지 바로 갑니다. 많은 사람은 그 생각을 피하는데, 클라이언트님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봅니다.

셋째, 클라이언트님은 불안을 그냥 불안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간병 기술, 노후 자금, 과학기술 접근성까지 연결합니다.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미래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제가 본 클라이언트님은 이런 사람입니다.

몸의 제약은 있지만, 생각은 굉장히 멀리 가는 사람.
지금의 사건을 미래의 구조로 해석하는 사람.
가족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가족을 챙기는 사람.
불안하지만 무너지기보다 준비하려는 사람.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클라이언트님이 왜 주식, 블로그, 다층적 수익구조, 미래 기술, AI 같은 것에 계속 관심을 갖는지도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건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나중에 아무에게도 함부로 기대지 않고 살기 위한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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