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부터 내 아내와 그 가족, 친누나들과 엄마를 겪으며 참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관계형 만족 성향과 성과형 만족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집에서 혼자 주식으로 수입을 만들고, 재택형 근무를 하며, 글을 작성해 블로그에 올려 수익을 만들어가려는 사람이다.
또 나에게 직접적으로 맞지 않는 사회적 제도나 구조가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우회해서라도 내게 직접적인 수익과 기회가 되도록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에 맞춰 살기보다, 내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실제로 내 삶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확실히 성과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해내고, 결과를 만들고,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 때 만족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 속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냥 사람을 좋아하고, 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그들이 말하는 관계라는 것이 정말 사람을 아끼는 마음인지, 아니면 남들 눈에 보기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한 체면극인지 의심하게 됐다.
실생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저 남이 “잘했다”라고 해주는 말 한마디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정작 가까운 사람의 시간과 감정과 에너지를 아무렇지 않게 소모시킨다.
나는 그게 싫다.
관계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체면을 위한 동원이다.
자기 만족을 위해 누군가를 들러리 세우고, 분위기를 맞추게 하고,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장면을 만들려고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게 불편했고, 이제는 솔직히 지겹다.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잘못된 성향과 잘못 길들여진 생활 습관 때문에 그것을 감당하고 힘든 것은 나인데, 그들은 그저 자기들 보기에, 또 자기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어 보이기만을 바란다.
내가 힘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삶이 실제로 어떻게 소모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의 체면이다.
남들이 봤을 때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장면이다.
자기들이 원하는 그림 안에 내가 얌전히 들어가 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서로 삶을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일을 넘어서, 굉장히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어떻게 보겠어?”
“내 체면이 뭐가 돼?”
“분위기 맞춰줘야지.”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이런 말들이 싫다.
이런 말들은 관계를 위한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대를 통제하기 위한 말이다.
상대의 마음을 묻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자기 기준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는 말이다.
나는 남들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해냈는지,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오늘보다 내일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관계형 인간들 중 일부가 참 피곤하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건강한 관계형 인간이 아니라 체면형 인간들이 피곤하다.
그들은 사람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 사이의 장면을 본다.
누가 와줬는지, 누가 챙겨줬는지, 남들이 어떻게 봤는지, 자기 위치가 어떻게 보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주변 사람을 세운다.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을 가져다 쓴다.
그리고 그것을 가족, 정, 도리, 분위기라는 말로 포장한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장면을 위해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는 있다.
진심으로 필요한 일이라면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들러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정확히는 사람 자체를 미워한다기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남의 체면을 위해 내 시간을 쓰고,
남들이 보는 장면을 위해 내 감정을 맞춰주고,
내 삶과 상관없는 분위기를 위해 들러리가 되는 일에서 멀어지고 싶다.
나는 내 에너지를 그런 곳에 쓰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시간과 힘은 내 삶을 세우는 데 쓰고 싶다.
주식이든, 글쓰기든, 블로그든, 재택형 일이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결과를 만들고 싶다.
내가 원하는 삶은 누군가의 체면을 채워주는 삶이 아니다.
내 삶은 누군가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삶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내가 직접 구조를 만들고, 직접 수익을 만들고, 직접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삶이다.
어쩌면 나는 차가운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이것이 더 정직한 삶이다.
나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남들 앞에서 아무 문제 없는 사람처럼 연기하기 위해 내 삶을 깎아 먹고 싶지 않다.
관계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관계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이라는 이름으로, 도리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자기 체면에 맞게 끌고 다니는 것은 관계가 아니다.
그건 관계를 이용한 통제다.
나는 앞으로도 성과를 통해 내 삶을 증명하고 싶다.
남들 눈에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조금씩 쌓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맞지 않는 구조가 있다면 우회하고,
내게 맞는 방식으로 다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수익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관계 속에 있고 싶다.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에서는 멀어지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관계만 남기고 싶다.
생각을 정리해보니, 내가 관계를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관계를 핑계로 사람을 들러리 세우는 방식이 오래전부터 싫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내 삶이 조종당하는 느낌이 싫다.
내가 원하지 않는 역할을 맡고, 원하지 않는 자리에 가고, 원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원하지 않는 분위기를 맞춰주는 일이 싫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관계에서 조금씩 벗어나, 내 방식으로 살아가려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 이벤트까지는 이미 약속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또 내키지도 않는 곳에 가서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들러리를 서야 한다.
또 내키지도 않는 곳에 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분위기를 맞춰줘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체면을 위해 내 삶을 소모하는 일.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내 감정을 억지로 맞추는 일.
내 삶과 상관없는 장면을 위해 들러리가 되는 일.
이제 더 이상 못 해먹겠다.
나는 내 방식으로 살 것이다.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일하고, 벌고, 쓰고, 쌓아갈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삶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버틸 수 있고, 내가 실제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이제는 진짜로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가 또 관계라는 이름으로 나를 들러리 세우려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따라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들의 체면은 그들의 몫이다.
내 삶은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