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1년 12월 11일에 내 페이스북에 작성했던 글이다. (https://youtu.be/0NAFqs61UjM)
제목: 판교 10년 공공임대 뉴스를 보며 떠올린 내 선택
며칠 전, 판교 10년 공공임대 아파트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10년 뒤에는 내 집이 될 줄 알고 살았지만, 막상 분양전환 시점이 오자 치솟은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뉴스에서는 10년 전 20평대 아파트 분양가가 2억 원대였는데, 10년이 지난 뒤에는 7억 원 수준이 되었다고 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뉴스 속 사람들과 내 상황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과 막막함은 너무도 익숙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될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그 시간이 끝났을 때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당사자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 있다.
부여로 온 것은 내 인생에서 신의 한 수였다는 것.
약 5년 전, 나는 성남의 10년 공공임대 아파트에 입주했었다. 처음에는 그저 새 아파트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좋았다. 깨끗한 집, 성남이라는 위치, 앞으로 10년은 살 수 있다는 안정감.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 아파트는 성남시에 있었고,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에는 집에서 강남역까지 15분에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분당신도시와도 하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었다. 입주할 당시 시가 기준 분양가는 3억 원대였고, 지금은 8억 원대까지 올라 있다.
돌이켜보면 집값이 오를 가능성은 너무나 뻔했다.
누가 봐도 그 위치의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집값이 오르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그 집을 살 수 있느냐였다.
시세차익이 5억 원이 났다고 해도, 그 돈은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 아니었다. 나는 내 손으로 1억이라는 돈도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8억, 10억에 가까운 집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임대로 입주할 당시 보증금은 9천만 원대였다.
그 돈조차 양가 부모님이 없는 돈, 있는 돈을 털어 보태주신 돈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계속 사는 것이 정말 나에게 맞는 선택일까.
나는 안정적인 집에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조용히 밀려가고 있는 걸까.
결국 나는 그 아파트를 나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돌아오는 말은 대부분 비슷했다.
“10년 살아봤자 임대료가 한 달에 28만 원 정도고, 다 합쳐도 65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냥 살아라.”
겉으로 들으면 맞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 달 28만 원이면 싸다. 10년을 살아도 큰돈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던 문제는 월세 28만 원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10년 뒤였다.
아직 5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 그 아파트의 시세는 이미 너무 멀리 가 있다. 앞으로 4년 정도가 더 지나 10년이 끝났을 때, 그 집을 살 돈을 나는 무슨 수로 마련할 수 있었을까.
둘 다 중증 장애가 있는 상황에서, 10년 동안 8억이나 10억에 가까운 돈을 마련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부분이 의문이다.
그때 사람들은 “그냥 살아라”고 쉽게 말했다.
하지만 10년 뒤에 그 집을 살 돈을 마련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남을 떠난 뒤 3년이 지나, 어쩌다 생활비가 부족해서 25만 원을 보태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금액도 큰일처럼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믿고 아무 대책 없이 10년을 보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앞으로 약 4년 뒤, 그 아파트가 10억 원 가까운 집이 되어 있었다면 누가 그 집을 사게 해주었을까.
이 생각만 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돈을 보태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책임의 문제다.
장애가 있는 동생이나 자식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자기 돈으로 조금 보태줄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1만 원이라도 깎아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왜 본인이 감당해야 할 일을 남에게 넘기려 하는 걸까.
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말은 쉽게 하는 걸까.
물론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은 있다.
모두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돕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남의 인생에 대해 “그냥 살아라”고 쉽게 말하려면, 그 말이 끝난 뒤의 책임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1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그 시간을 흘려보내면, 마지막에는 더 큰 막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내가 부여로 오지 않고, 보증금 9천만 원에 매달 30만 원 가까운 임대료를 내며 성남에서 10년을 채웠다면, 앞으로 4년 뒤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
아마 또다시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무능한 장애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족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또 하나의 짐처럼 여겨졌을지 모른다.
보증금과 임대료 자체가 아까운 것은 아니다.
그 집에서 살았으니 그 비용은 주거비였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10년을 보냈다면, 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었을 것이다.
시간.
판단.
그리고 내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기회.
요즘 내가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이것이다.
사람은 앞을 내다보고 살아야 한다.
당장 눈앞이 편하다고 해서 그 선택이 항상 좋은 선택은 아니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몇 년 뒤 어떤 상황이 닥칠지 생각해야 한다. 특히 나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은 더 그렇다.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비장애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부정한다고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정해야 한다.
내가 가진 조건을 인정하고, 그 조건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래서 요즘 더 뼈저리게 느낀다.
성남에서 공주와 부여 쪽으로 내려온 선택은 내 인생에서 신의 한 수였다고.
누군가 보기에는 지방으로 내려간 것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어쩌면 좋은 위치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후퇴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방향 전환이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미래를 남의 말에 맡기지 않았다.
내가 처한 현실을 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을 찾으려 했다.
판교 10년 공공임대 뉴스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내 선택을 떠올렸다.
그 뉴스가 내 마음을 건드린 이유는 단순히 집값 때문이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처럼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막상 그 시간이 끝났을 때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게 된 모습 때문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때 내가 성남을 떠난 것은 단순히 집을 옮긴 일이 아니었다.
내 삶을 남의 말에 맡기지 않기로 한 결정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미래에서 한 걸음 물러난 선택이었다.
이 글은 누군가를 원망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내가 잘났다고 말하기 위해 남기는 글도 아니다.
다만 먼 훗날, 내가 다시 이 시기를 돌아볼 수 있도록 기록해두고 싶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왜 성남을 떠났는지.
왜 부여로 왔는지.
왜 그 선택을 신의 한 수였다고 느끼는지.
잊지 않기 위해 남겨둔다.
나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