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무섭게 빠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30만 원을 훌쩍 넘었던 주가가 20만 원대 중반까지 내려왔고, 장중에는 24만 원까지 찍었다.
대형주인 삼성전자가 이렇게 빠르게 무너지는 모습은 흔하지 않다.
나 역시 처음에는 26만 원대가 충분히 좋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가는 내가 생각했던 가격보다 더 빠르게 내려갔다.
결국 나는 다른 계좌에서 삼성전자 11주를 매수했다.
나는 기존에 반도체주를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하락은 반도체 비중을 처음 만드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많이 빠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수한 것은 아니다.
이번 하락을 보면서 국민연금의 리밸런싱과 외국인 매도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
리밸런싱이란 자산 가격이 올라 비중이 커지면 일부를 팔고, 가격이 내려 비중이 작아지면 다시 사면서 원래 정해둔 투자 비중을 맞추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많이 오른 자산은 일부 수익을 실현하고, 많이 내려간 자산은 다시 채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크게 오르는 동안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비중을 적극적으로 줄이지 않았다.
국내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팔지 않는다고 해서 매도 물량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외 펀드들은 정해진 비중에 따라 리밸런싱을 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가격이 올라 한국 주식 비중이 높아지면 외국인들은 보유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연금이 팔 수 있었던 물량을 외국인들이 대신 팔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번 삼성전자 하락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삼성전자의 사업이 갑자기 무너졌다기보다는, 그동안 많이 오른 반도체 비중을 외국인들이 줄이는 과정에서 하락 폭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하락을 무조건 매수 기회로만 봐서도 안 된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지금은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메모리 공급 부족으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높은 이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높은 반도체 가격과 이익률이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다.
현재 반도체 공급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EUV 장비와 핵심 부품 공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은 공장을 짓고 싶어도 장비가 부족해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
이 공급 병목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높은 수익성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장비 공급이 늘고, 마이크론을 비롯한 경쟁사들의 생산량까지 증가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AI 기업들이 높은 메모리 가격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도 확인해야 한다.
AI 수요가 계속 늘더라도 메모리 가격이 내려가면 매출은 늘고 이익률은 떨어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도체 판매량만이 아니다.
가격과 판매량을 곱한 전체 이익이 시장의 높은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삼성전자 매수를 무조건적인 장기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급락한 가격에서는 중장기 물량을 만들되, 반도체 업황이 꺾이는 신호가 나오면 비중을 줄일 생각이다.
주가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팔지는 않겠지만, 반도체 가격 하락이나 수요 둔화가 실제로 확인되는데도 끝까지 버티지는 않을 것이다.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는 것과 업황 변화를 무시한 채 무조건 버티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번 삼성전자 11주 매수는 바닥을 정확히 맞혔다고 생각해서 한 매수가 아니다.
고점에서 충분히 내려온 가격에서 반도체 비중을 처음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더 내려갈 수도 있다.
당분간은 반등과 재하락을 반복하며 바닥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나는 본격적인 움직임이 나오려면 8월 말이나 9월까지 기다려야 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그래도 반도체주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 이번 급락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구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됐다.
AI 산업이 성장하려면 반도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데이터센터를 돌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현재 AI 산업의 또 다른 병목은 전기와 냉각, 송전 인프라다.
내가 삼성전자와 함께 두산에너빌리티를 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반도체를 담당한다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과 가스터빈을 통해 AI가 사용할 전력을 만드는 쪽에 가깝다.
물론 두 종목 모두 이미 기대가 많이 반영됐고 변동성도 크다.
그래서 한 번에 모든 자금을 넣기보다 하락 폭이 클 때 조금씩 비중을 늘리는 방법이 더 맞다고 본다.
이번 매수가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번 하락을 단순히 공포스러운 장면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많이 올랐던 종목의 비중이 줄어드는 과정이었고, 장기적으로 필요했던 반도체 비중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시간이다.
삼성전자가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만 가지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가격과 공급, AI 투자, 외국인 수급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속 확인할 생각이다.
많이 빠졌기 때문에 산 것이 아니다.
많이 빠진 가격에서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들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매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