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삼성전자의 노조 움직임이 말해주는 것, 노동의 시대가 짧아지고 있다

나는 이번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노조 움직임을 단순한 임금 갈등으로만 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노조의 요구를 보면 늘 먼저 돈 이야기를 떠올린다. 임금을 더 올려 달라는 것, 성과급을 더 달라는 것, 처우를 더 개선해 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안쪽에 훨씬 더 깊은 불안이 깔려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안의 중심에는 피지컬 AI와 자동화가 있다.

지금까지의 AI는 많은 사람들에게 화면 안의 기술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고, 정보를 정리하고, 질문에 답하는 정도의 존재로 보였기 때문에 아직은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피지컬 AI는 다르다. 그것은 생산, 조립, 운반, 검사, 물류처럼 현실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오는 기술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손과 발, 그리고 반복된 판단이 담당하던 영역을 빠르게 침범하기 시작하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이 지점부터 노동자들이 느끼는 위기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더 이상 기술이 일을 도와주는 수준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의 자리를 조금씩 대체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노조의 움직임은 단순히 지금 월급을 더 받기 위한 행동으로만 보기 어렵다. 나는 오히려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다고 본다. 즉, 아직 말로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몸은 먼저 알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기술이 더 깊숙이 들어오면 인간 노동의 가격은 지금보다 낮아질 수 있고, 지금 맡고 있는 역할 가운데 상당수는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으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임금 요구는 단순한 생활비 차원의 요구가 아니라, 미래의 상실 가능성까지 미리 반영한 선제적 보상 요구의 성격을 띠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요구를 보면 쉽게 탐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욕심이라기보다, 자신의 노동가치가 빠르게 약해질 수 있다는 구조적 불안 앞에서 나타나는 본능적인 반응에 가깝다. 노동자들은 아직 자신의 노동이 시장에서 의미 있게 평가받는 시기에 가능한 한 더 많은 보상을 확보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기술 변화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같은 자리, 같은 조건, 같은 협상력을 다시 갖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협상은 올해 연봉을 둘러싼 협상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일터를 떠난 뒤의 상실까지 염두에 둔 협상일 수 있다.

결국 이번 노조 움직임의 핵심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생존의 문제라고 본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신의 시간이 아직 가치 있을 때 그 가치를 최대한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기업은 효율과 생산성을 말할 것이고, 노동자는 고용 안정과 인간의 역할을 말할 것이다. 이 충돌은 일시적인 마찰이 아니라, 앞으로 반복해서 나타날 시대적 충돌의 예고편에 가깝다. 나는 이번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노조 움직임을 그렇게 본다. 사람의 직업구조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다. 그리고 피지컬 AI는 그 변화를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노동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드는 현실의 문제로 끌어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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