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를 두고 저성장 고착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수출은 부진했고, 반도체 가격은 하락했으며, 물가와 금리가 동시에 오르면서 가계와 기업의 부담도 커졌다. 국내 증시는 약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부동산과 건설 경기도 빠르게 위축됐다.
그런데 불과 2~3년이 지난 현재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반도체는 AI 산업의 핵심으로 다시 평가받고 있고, 조선·방산·원전·전력기기 같은 한국의 주력 산업도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증시는 기업 실적 회복과 정책 기대를 반영하며 이전과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한국 경제의 실력이 갑자기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정부가 바뀌면서 경제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경제의 체질이 2~3년 만에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한국에 불리한 경제 조건이 한꺼번에 겹쳤고, 현재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에 유리한 조건이 동시에 형성되고 있다. “
경제 성적표를 비교하려면 어느 정부의 성장률이 더 높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각 정부가 어떤 조건에서 출발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왜 저성장을 걱정했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은 세계경제의 방향이 급격히 바뀌던 시기였다.
코로나19 시기에 풀렸던 막대한 유동성과 공급망 차질로 이미 물가가 오르고 있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생하면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2022년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은 빠르게 금리를 올렸다.
2022년 1월 1.25%였던 기준금리는 같은 해 11월 3.25%까지 상승했고, 2023년 1월에는 3.50%에 도달했다.
금리가 오르면 예금이자가 늘어난다는 장점도 있지만, 경제 전체에는 강한 제동이 걸린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의 이자 부담이 증가하고, 기업의 투자 비용도 높아진다. 소비자는 지출을 줄이고 기업은 신규 투자와 채용을 보수적으로 바꾸게 된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달러가 강해지고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2022년 미국의 빠른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가 원·달러 환율 상승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반도체마저 불황에 빠졌던 시기.
한국 경제가 특히 어려웠던 이유는 고물가·고금리와 함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까지 하락 사이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에 전자제품과 서버 수요가 급증하자 기업들은 반도체 주문과 생산을 크게 늘렸다. 그러나 이후 수요가 둔화되면서 재고가 쌓였고, 메모리 가격이 빠르게 하락했다.
2023년에는 반도체 불황과 대중국 수출 감소, 세계적인 제조업 부진이 동시에 나타났다.
결국 202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쳤다. 한국은행은 고물가·고금리로 소비 회복세가 약해지고, 세계 제조업 부진으로 수출 증가세도 둔화됐다고 평가했다.
주식시장도 이런 환경을 그대로 반영했다.
2021년 말 2,977.65였던 코스피는 2022년 말 2,236.40까지 하락했다. 금리 인상과 원화 약세, 우크라이나 전쟁, 기업 실적 둔화가 한꺼번에 투자심리를 압박했다.
따라서 당시의 저성장 우려를 전부 정부의 정책 실패로만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고 금리가 급등하는 가운데, 한국의 핵심 수출 산업까지 불황에 빠지는 좋지 않은 조건이 겹쳐 있었다.
그렇다면 불과 2~3년 만에 무엇이 달라졌나?
2~3년은 국가 산업 전체가 새롭게 만들어지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반도체 가격과 금리, 주식시장 분위기가 한 번의 사이클을 도는 데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분위기가 빠르게 달라진 첫 번째 이유는 반도체 경기의 반전이다.
한국은행은 현재의 글로벌 반도체 확장 국면이 2023년 3월 무렵부터 시작됐으며,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HBM과 범용 D램 수요를 빠르게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반도체는 수요 변화에 맞춰 공급을 곧바로 조절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수요가 줄어도 이미 건설한 생산시설에서 제품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하락한다. 반대로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면 공급시설을 즉시 확대할 수 없어 가격과 기업 이익이 급격히 상승한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공급의 시간차가 반도체 경기순환을 만드는 핵심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즉, 2023년에는 재고가 넘쳐나던 반도체가 AI 투자 확대를 만나면서 불과 몇 년 사이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금리와 물가 조건도 달라졌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려야 했다.
하지만 이후 물가상승률이 점차 낮아지면서 한국은행은 2024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었다. 기준금리는 2023년 1월 3.50%에서 2025년 5월 2.50%까지 내려갔다. 2026년 7월에는 경기 회복과 물가 압력 때문에 2.75%로 다시 인상됐지만, 윤석열 정부 초기의 긴축 국면과는 경제 분위기가 다르다.
금리가 낮아지면 주식의 상대적인 매력이 높아지고,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도 줄어든다.
물가와 금리가 동시에 치솟던 시기에는 좋은 기업도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반대로 금리 부담이 완화되고 기업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면 실제 경기보다 주식시장이 먼저 상승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보다 앞으로 6개월에서 1년 뒤의 기업 이익을 먼저 반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어떤 경제를 넘겨받았나?
현 정부는 2025년 6월 4일 출범했다.
그러나 출범 당시 한국 경제가 모든 부분에서 호황이었던 것은 아니다.
2025년 한국 경제는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였지만, 건설투자와 내수가 부진해 성장률이 1.0%에 그쳤다. 상반기에는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성장세가 크게 약해졌고, 하반기부터 소비심리와 IT 수출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 정부가 완성된 호황을 그대로 넘겨받았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현 정부는 다음과 같은 서로 다른 두 경제를 동시에 넘겨받았다.
| 좋아지고 있던 부분 | 여전히 부진했던 부분 |
|---|---|
| AI 반도체 수출 | 건설투자 |
| 조선·방산 수주 | 지방경제 |
| 경상수지 흑자 | 자영업·소상공인 체감경기 |
| 주식시장 기대감 | 일부 비IT 제조업 |
| 미국의 중국 견제에 따른 기회 | 가계부채와 부동산 부담 |
즉, 수출 대기업과 주식시장은 호황을 기대하기 시작했지만, 건설·내수·지역경제는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현 정부의 정책 효과는 어디까지인가?
현재 경제 분위기가 좋아진 것을 모두 현 정부의 성과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공장과 연구개발 투자는 수년 전부터 진행됐고, 조선업의 선박 수주도 계약 이후 건조와 인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방산과 원전 계약 역시 정부 간 협상과 기업의 준비가 장기간 이어진 뒤 실적으로 나타난다.
지금 확인되는 수출과 기업 이익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전 정부와 그 이전부터 기업들이 진행해온 투자와 계약의 결과다.
미국의 중국 견제도 현 정부 출범 후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과학법을 제정해 약 53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산 전기차·반도체·배터리 등에 대한 관세도 단계적으로 높였다.
그러나 정책이 만들어졌다고 효과가 바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투자 장소를 결정하고 공장을 건설하며 공급계약을 조정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비용과 불확실성이 먼저 나타났고, 현재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부 시장 기회가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 경제정책은 발표한 정부와 실제 성과가 나타나는 정부가 다를 수 있다. “
이 시간차 때문에 현재의 경제 성과를 한 정부의 공으로만 돌리거나, 과거의 부진을 한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 정부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 정부가 물려받은 산업 흐름이 유리했다고 해서 정부의 역할이 전혀 없다는 뜻도 아니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소상공인 지원을 확대했다. 2025년 7월 국회에서 관련 추가경정예산이 확정됐다.
이런 정책은 반도체 수출을 직접 늘리는 정책은 아니지만, 약했던 소비와 지역 내수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KDI도 2026년 민간소비가 소득 개선과 정부 지원 정책에 힘입어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수출과 설비투자의 중심은 여전히 반도체이며, 반도체를 제외한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약한 상태다.
한국은행은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6%로 높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현 정부의 소비 지원보다 반도체 경기 호조였다.
따라서 현재의 성장에는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 반도체와 수출 회복은 세계 산업 사이클의 영향이 크고,
소비와 심리 회복에는 현 정부의 재정정책이 일정 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 ”
증시 상승은 누구의 성과인가?
주식시장만 놓고 보면 윤석열 정부 초기와 현재의 차이는 매우 크다.
2022년에는 고금리와 반도체 불황으로 기업의 미래 이익이 낮게 평가됐다. 현재는 AI 반도체 이익 증가, 조선·방산 수주, 자본시장 제도 개선 기대가 증시에 반영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말부터 2026년 3월 말까지 코스피의 누적 상승률은 76.9%에 달했다.
하지만 이 상승을 특정 정부의 성과로 전부 돌리기는 어렵다.
상승은 현 정부 출범 이전인 2023년 말부터 시작됐고, 반도체 경기 회복과 기업 실적 개선 기대가 먼저 작용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2024년부터 시행돼 기업의 주주환원 확대를 유도했다.
현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과 투자심리 개선이 이후 상승 흐름에 힘을 보탰을 수는 있지만, 증시 상승의 출발점까지 현 정부의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 초기의 주가 하락도 정부 정책만의 결과는 아니었다. 당시 미국과 한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세계적인 주식시장 조정이 함께 발생했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내수는 현재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수출과 주식시장만 보면 현재 경제가 전면적인 호황에 들어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과 건설, 지방 내수까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주택 구매 부담이 증가하고 부동산 거래가 위축됐다. 건설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융비용 증가의 영향을 함께 받았다.
현재는 당시보다 기준금리가 낮아졌지만, 건설투자는 여전히 강하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KDI는 2026년 건설투자 증가율을 0.1%로 전망하고 있으며, 반도체를 제외한 설비투자도 미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호황을 국민 모두가 체감하는 호황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코스피가 크게 상승하더라도, 건설업 종사자와 자영업자, 지방 중소기업이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다를 수 있다.
두 정부의 조건을 비교하면
| 비교 항목 | 윤석열 정부 초기 | 현 정부 |
|---|---|---|
| 물가 | 원자재·에너지 가격 급등 | 초기보다 안정됐으나 최근 재상승 압력 |
| 금리 | 빠른 인상 국면 |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출발 |
| 반도체 | 재고 증가와 가격 하락 | AI·HBM 중심의 강한 상승 사이클 |
| 중국 | 대중국 수출 감소와 경기 부진 | 중국 견제의 반사이익과 중국의 추격이 공존 |
| 미국 정책 | 공급망 재편이 시작되며 불확실성 확대 | 공급망 재편의 일부 효과가 실제 투자·수출로 연결 |
| 주식시장 | 고금리와 실적 둔화로 약세 | 반도체 실적과 정책 기대를 반영한 강세 |
| 부동산·건설 | 금리 충격으로 위축 | 금리는 낮아졌지만 건설 부진 지속 |
| 내수 | 고물가와 이자 부담 | 재정 지원과 심리 개선으로 일부 회복 |
| 정부의 과제 |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 | 호황을 내수와 장기 성장으로 확산 |
이 표를 보면 두 정부가 사실상 같은 시험을 치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외부 충격을 막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현 정부는 상대적으로 좋은 반도체와 수출 조건을 이용해 내수와 생산성, 자본시장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다.
외부 조건과 정부의 실력을 구분해야 한다.
경제를 평가할 때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
국제유가, 세계 금리, 전쟁, 반도체 가격, 중국의 경기 같은 변수는 한국 정부가 직접 결정할 수 없다.
반면 외부 충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기업 투자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원했는지,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의 피해를 어떻게 줄였는지는 정부의 실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의 저성장을 모두 정부의 무능으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당시에는 고물가·고금리·전쟁·반도체 불황이 한꺼번에 겹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조건이 나빴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정책 판단이 면책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호황을 모두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보기도 어렵다.
AI 반도체 수요와 조선·방산 수주는 어느 정부가 단기간에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 나쁜 조건은 모든 실패의 변명이 될 수 없고, 좋은 조건도 모든 성공의 증거가 될 수 없다. “
2~3년 만에 한국의 실력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저성장을 걱정했는데 현재는 호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국의 산업 실력이 갑자기 몇 배로 좋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한국의 약점이 부각되는 세계경제 환경이었다.
고물가와 고금리, 반도체 재고 증가, 중국 경기 부진이 한국 경제에 동시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현재는 한국의 강점이 부각되는 환경이다.
AI 투자가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리고, 세계적인 군비 확대와 에너지 안보 문제가 방산·조선·원전 산업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도 한국 기업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과거에 이루어진 투자와 수주가 현재 실적으로 나타나는 시간차가 더해졌다.
따라서 불과 2~3년 사이에 분위기가 바뀐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한국이 전혀 다른 나라가 된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한국의 약점보다 강점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
현 정부가 유리한 산업 사이클에서 출발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호황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반도체 수출이 줄어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지, 주식시장 상승이 기업 투자와 가계소득으로 이어지는지, 수도권과 대기업의 호황이 지방과 중소기업으로 확산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현재 정부의 진짜 성적표는 좋은 산업 사이클을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 외부의 좋은 조건이 사라진 뒤에도 한국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느냐가 진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