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식투자에 빠져드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수익은 중요하다. 투자라는 행위의 가장 직접적인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니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주식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돈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나는 경쟁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감정에서 나오는 피로에 너무 오래 지쳐 있었다.
약 2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일이 어려운 것도, 경쟁 자체도 아니었다.
내가 가진 능력과 내가 들인 노력이 그대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조직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결과를 만들어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고, 능력보다 인간관계가 앞서는 경우도 있다.
경쟁이 생기면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고,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어제까지 괜찮았던 행동이 사람이 달라지면 문제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의 잘못은 관계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었다.
장애였다.
중증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나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결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전에 무엇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시선이 있었고, 내가 만들어낸 결과보다 장애라는 조건을 먼저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능력을 보여줘야 했고, 그 능력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줘야 했고, 심지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었다.
그것은 많이 지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일 때문에 지쳤던 것보다 사람 때문에 지쳤던 시간이 더 많았다.
업무의 어려움은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었고, 부족한 것은 연습하면 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시기와 질투, 편견, 이해관계, 편 가르기, 관계의 친소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내가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었다.
불필요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피로였다.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고, 성과를 내는 것뿐 아니라 그 성과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신경 써야 하는 환경.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이어졌던 처가 식구들과의 갈등과 그 과정에서 내가 겪었다고 느낀 여러 부당한 일들까지 겹치면서, 이런 생각은 더 선명해졌다.
직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까운 인간관계 안에서도 사실과 논리보다 감정이 앞설 수 있었고, 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와 선입견이 사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행동은 정당화하면서 상대에게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의 판단과 감정에 휘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군가의 인정에 기대고,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고, 인간관계의 분위기에 따라 내 삶의 안정이 흔들리는 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식투자가 내게 갖는 의미도 달라졌다.
단순히 부수입을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내 판단과 능력으로 내 삶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지금 더욱더 주식투자에서 내 남은 인생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정립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주식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 역시 위험하고, 실수하면 손실을 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위험은 내가 공부하고 판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영역에 가깝다.
사람의 마음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매수 가격은 통제할 수 있다.
누군가의 질투를 막을 수는 없지만, 내 투자 비중은 조절할 수 있다.
사람들의 편견을 없앨 수는 없지만, 내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공부할 수는 있다.
나는 이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은 냉정하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곳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냉정함이 좋다.
시장은 내가 장애인인지 관심이 없다.
내가 말을 잘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친한지, 누구에게 잘 보였는지도 묻지 않는다.
학벌도, 직책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내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기업을 어떻게 분석했는지.
가격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언제 기다렸고 언제 움직였는지.
욕심과 공포를 얼마나 통제했는지.
그리고 결과는 결국 숫자로 나타난다.
물론 주식시장이 완벽하게 공정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보의 차이도 있고, 거대한 자본과 개인투자자의 조건도 다르다.
아무리 공부해도 틀릴 수 있고, 예측하지 못한 사건 하나로 좋은 분석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주식시장을 편하게 느끼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누군가가 나를 싫어해서 내 계좌의 수익을 깎지는 않는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매수가격이 더 비싸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질투 때문에 내가 옳게 판단한 기업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 판단이 틀렸다면 손실을 본다.
내 판단이 맞았다면 수익을 얻는다.
그리고 틀렸다면 원인을 찾아 다시 공부하면 된다.
나는 이 단순함이 좋다.
직장에서는 결과가 좋아도 설명해야 할 때가 있었다.
왜 내가 잘했는지를 증명해야 했고, 때로는 잘하고도 인정받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주식에서는 수익이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다.
계좌의 숫자를 설득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밖에서 보면 매일 차트를 보고 기업을 공부하는 것이 피곤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느낀다.
차트를 보는 피로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피로가 더 컸다.
기업을 분석하는 어려움보다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숫자를 공부하는 것은 힘들어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에서 오는 질투, 시기, 못마땅함 등은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다.
주식투자에서 또 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를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남이 나보다 큰 수익을 냈다고 해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성공했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종목에서 내가 원하는 수익을 만들면 된다.
그래서 주식에서 내가 경쟁하는 대상은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니다.
과거의 나다.
조급하게 매수했던 나.
욕심 때문에 매도하지 못했던 나.
두려움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쳤던 나.
충분히 공부하지 않고 판단했던 나.
그런 나를 하나씩 수정해가는 과정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좋은 판단을 하고, 지난번보다 실수를 하나 덜 하고, 조금 더 냉정하게 기다릴 수 있다면 나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주식투자를 단순한 재테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주식은 돈을 버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아주 오랫동안 원했던 자기검증의 공간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타인의 평가와 감정에 덜 휘둘리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선택권을 만들어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은 곳.
나의 능력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
내가 판단하고, 내가 책임지고, 그 결과를 내가 받아들이는 곳.
내가 주식에서 찾고 있었던 것은 큰돈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주관적인 평가 속에서 살아왔다.
직장에서도 그랬고,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갈망했던 것은 성공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피곤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세상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한 판단과 내가 들인 노력에 대한 결과를 다른 사람의 편견과 감정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세상을 원했던 것이다.
주식시장은 완벽하게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많은 조직과 인간관계보다 훨씬 솔직하다.
틀리면 손실이라는 답을 주고, 맞으면 수익이라는 답을 준다.
핑계도 없고 위로도 없다.
대신 다시 공부할 기회를 준다.
그래서 나는 주식에 빠져드는 것 같다.
돈 때문만이 아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겪었던 경쟁과 인간관계의 피로, 그리고 최근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까지 겪으면서 한 가지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내 남은 인생은 가능한 한 불필요한 사람들과의 감정에서 오는 피곤함보다 나 자신과의 경쟁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삶으로 가는 중요한 하나의 답을 주식투자에서 찾고 있다.
어쩌면 나는 주식시장에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지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난 것이다.
누군가의 불필요한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어제의 나를 더 나은 나로 발전 기키기 위한 노력과 결과.
나는 이제 남은 인생에서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견디며 살아남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나 자신의 판단과 실력을 키우는 데 그 에너지를 쓰고 싶다.
그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내가 주식투자에 빠져드는 이유다.